정문규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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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문규미술관
제목 에듀케이트와 함께하는 해설이 있는 미술관
내용

 

한국 미술의 거장전Ⅳ 박석호전

(박석호 화백의 미발표작품 최초공개 특별전)

박석호 회백의 아들 박래현 도자기 명장의 '父唱子隨'展

 

일   시 :  9월 27일

대   상 :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 누구나

장   소 :  정문규 미술관 2층, 3층 전시실

※ 많은 참여 바랍니다

 

한국적 서민적 그리움의 작가, 박석호

 

 

정문규미술관장 정문규

 

 

해방직후 한국의 미술학교는 홍익대 미대와 서울대 미대의 두 대학이 양대 경쟁구조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울대학교는 당시 장발 학장을 선두로 하였고, 홍익대학교는 윤효중, 김환기, 이봉상 등이 중심이 되어 한국의 당시 미술교육을 이끌고 있었다. 해방이 되었어도 일제시대 선전(일제 총독부가 주관한 조선미술전람회)에 길들여져 있던 보수주의 화단에 홍익대학교 미대의 탄생은 한국미술의 새로운 여명을 알리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기점이 되었다.

 

충북 옥천의 시골청년 박석호는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작정 상경하여 1949년에 창설된 홍익대학 미술학부 제1회 신입생으로 입학하였고, 한국전쟁을 겪은 후 1953년에 졸업하게 된다. 졸업과 동시에 학부시절부터 남달리 관심을 가져주시던 김환기, 윤효중선생님의 권유로 홍익대 조교로 근무하게 되었고, 스스로 인간적 감화를 받았다는 김환기선생과 막역한 관계를 시작하며 김환기선생이 한원(寒園)이라는 호를 직접 지어주기도 하였다. 윤효중, 김환기, 이봉상, 박석호 이분들이야 말로 진정 오늘날의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을 있게 한 공로자들이라 하겠다.

 

1954년 홍익대학교에 입학한 나는 그당시 조교로 근무하던 박석호선생을 처음 만났고, 그 시절 내가 기억하는 그는 너무나 인간적인 따스함이 있었고 순수하고 해맑은 인간이었고 열정적인 예술가였다. 그의 나이는 나보다 15살이 많았지만 나뿐 아니라 모든 후배들에게 선배나 연장자로서가 아니라 격이 없는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하여 정확한 나이를 모르는 후배들은 모두 그저 몇 해 정도의 선배려니 생각하고 허물없게 지내기도 하였다.

그는 조교로 있을 때나 후에 교수로 있을 때나 한 결 같이 가르치는 학생들과 똑같은 학구적인 자세로 돌아가서 수련하고 탐구하는 자세로 창작활동을 위한 기초연마에 힘썼고 이로 인하여 그의 작품에선 언제나 정직하고 신선한 기운이 지배하였고, 가식 없이 진정한 마음으로 온갖 사람들을 대하는 그의 솔직한 언어와 생활 태도들이 일생동안의 그의 작품세계에도 온통 담기게 된다.

 

1966년 홍익대 미술대의 일련의 내분(사건)으로 교수를 그만둔 뒤, 창작활동에만 전념하게 되었고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면서 자연스럽게 구체적인 서민의 삶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작가가 체험한 서민의 생활모습과 치열한 삶의 체취를 생동감 있는 붓놀림과 어두운 색조로 형상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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